《고래 심장을 수선하는 남자》 투박한 진심, 기적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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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 담기지 않은 글은, 영혼 없는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부산 감천항, 쇠를 깎는 소음과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포코중공업 현장에서 만난 김귀동 회장님은 단호했습니다. 사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남모를 진통이 있었습니다.
회장님은 저를 만나기 전, 부산의 한 유명 출판사에 자서전을 의뢰하셨습니다. 수많은 인터뷰와 집필 과정을 거쳐 출간 직전까지 갔지만, 최종 원고를 읽어보신 회장님은 돌연 ‘계약 파기’를 선언하셨습니다. 유려한 미사여구로 포장된 글 속에서 정작 본인이 목숨처럼 지켜온 치열한 삶의 냄새와 '진심'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삶을 미화하지 마시오. 그냥 있는 그대로, 펄떡이는 심장 소리를 담아주시오.“
그렇게 원점으로 돌아간 작업은 제게 무거운 과제이자 기회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회장님과 감정의 결을 맞추며 '공명(共鳴)'하는 방식을 취하였습니다. 의뢰인의 감정과 경험을 내 것처럼 깊이 느끼고 진심으로 화답하는 소통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죠. 제가 늘 고수해 온 그 투박하지만, 정직한 방식으로 펜을 들었던 것입니다.
멈춰선 거대한 선박(고래)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 남자, 그리고 그 진심을 알아본 출판사의 기적 같은 제안까지. 그 뜨거운 기록의 뒷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1. 다시 쓴 원고, 주파수를 맞추다
이미 한 번의 실패를 겪으신 터라, 회장님의 기준은 높고 엄격했습니다. 저는 단순한 사실 나열을 넘어 그 이면에 숨겨진 '감정의 소용돌이'를 포착하려 애썼습니다.
포코 앞바다 감천항에 정박 중인 수리선박 모습
에어컨 나오는 사무실이 아닌 현장에서,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회장님을 충분히 공감하기 위해 직접 포코 현장을 찾았습니다. 현재의 규모를 갖추기까지 어려웠던 시절의 얘기도 들었습니다. IMF 시절 돼지국밥 한 그릇을 놓고 삼켜야 했던 가장의 눈물, 믿었던 직원들에게 배신당했을 때의 참담함, 그리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기술력 하나로 정면 돌파해 낸 독기 어린 다짐까지.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군 사업체라고 생각하니 저절로 숙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작가가 아닌 청자가 되어 그 날것의 감정들을 공유했기에 순조롭게 원고의 여백을 채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초고를 읽으신 회장님은 그제야 굳게 다문 입을 여시고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이제야 내 심장 소리가 들리는구만. 이게 진짜 내 이야기요.“
그것은 작가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습니다.
2. IMF의 파고 속, 야생으로 뛰어든 승부사
이야기는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 시작됩니다. 안정적인 대기업 수리 감독직을 박차고 나와 야생으로 뛰어든 40대 가장의 결단. 초기 자본금은 바닥을 드러내고, 주변의 냉소와 시련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회장님은 "궁즉통(窮卽通)"의 정신으로 버텼습니다. 영도 '깡깡이 마을'의 작은 공장에서 시작해, 지금의 감천항 전용 부두를 마련하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혁신의 연속이었습니다.
"회사는 사장의 그릇 이상으로 커질 수 없다."
매일 아침 전 직원과 국민체조를 하고, 넝마 같던 작업복 대신 유니폼을 입혀 기술자의 자존감을 세워준 그의 '사람 경영'은, 3D 업종이라 기피하던 현장을 청년들이 꿈을 키우는 터전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3. '자비출판'에서 '기획출판'으로…원고의 힘
원고가 완성될 즈음, 또 하나의 드라마 같은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당초 회장님은 출판 비용 전액을 본인이 부담하는 '자비출판(Self-Publishing)'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서점 유통보다는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기록용 성격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탈고 직후, 이 원고가 가진 힘을 확신했습니다. 한 개인의 성공담을 넘어, 대한민국 뿌리산업을 지키는 장인 정신과 위기 극복의 메시지가 대중에게도 충분히 울림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평소 알고 지내던 출판사 대표님께 원고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출판사로부터 놀라운 답장을 받았습니다.
"작가님, 원고에 감동했습니다. 요즘처럼 출판 시장이 어려울 때일수록 이런 좋은 책은 세상에 나와야 합니다. 저희가 제작비 전액을 투자하고 인세까지 드리는 기획출판으로 진행하고 싶습니다.“
단순한 기록물로 남을 뻔했던 원고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정식 출판 계약을 맺고 전국 서점에 깔리게 된 것입니다. 회장님도 이 뜻밖의 제안에 흔쾌히 응하시며, 당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이처럼 기뻐하셨습니다. 진심으로 쓴 글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단순한 기록물로 남을 뻔했던 원고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정식 출판 계약을 맺고 전국 서점에 깔리게 된 것입니다. 회장님도 이 뜻밖의 제안에 흔쾌히 응하시며, 당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이처럼 기뻐하셨습니다. 진심으로 쓴 글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에게 책이 읽히길 바라시며 부산에서 출판기념회도 열어 저를 초대하셨습니다. 이날 참석한 귀빈들께 원고 집필을 도와준 작가라고 소개하며 저를 무대에 세우셨습니다. 매사에 당당하고 솔직하신 회장님의 따뜻한 배려에 감동했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Writer's Note] 망치 소리와 용접 불꽃이 튀는 치열한 현장에서, 김귀동 회장님은 늘 "우리는 배를 고치는 의사다"라고 자부하셨습니다. 멈춰선 거대한 배를 고쳐 다시 오대양으로 내보내는 그들의 손은 기름때에 절어 있었지만, 그 어떤 예술가의 손보다 아름다웠습니다. 이 책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땀 흘리는 모든 기술자와 경영인들에게, 그리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라는 희망의 신호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 | 김명화 (자서전 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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