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의 회고록 한 페이지
페이지 정보

본문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생시처럼 잔상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어머니와 저는 일본의 어느 전통시장을 걷고 있었습니다. 낯선 인파 속에서 발길을 멈춘 어머니의 시선 끝에는 화려한 옷가게가 있었습니다.
주인이 일본어로 말을 걸자,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유창한 일본어로 대꾸하셨습니다. 주인이 긴 장대로 내려 보여준 옷은 알록달록한 무늬에 노란색이 배합된 고운 투피스였습니다.
어머니가 그 옷을 흥정하는 사이, 문득 고개를 든 제 눈앞에는 눈 덮인 후지산의 황홀한 절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가슴이 터질 듯 벅차오르는 그 감동에 저는 그만 잠에서 깨고 말았습니다.
깨고 나니 밀물처럼 자책이 밀려왔습니다. 생전 어머니 모시고 여행 한 번 제대로 다녀오지 못한 못난 딸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슬픈 위로였을까요.
일제강점기에 간이학교를 다니며 총명했던 소녀. 중학교 졸업 무렵 터진 6.25 전쟁으로 가세가 기울자 떠밀리듯 시집을 와야 했던 당신. 열세 식구의 끼니와 일 년에 열세 번의 제사를 치러내느라, 당신은 정작 친정어머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셨습니다. 평생을 고향 한 번 마음 편히 다녀오지 못하고 가슴에 ‘한(恨)’이라는 멍울을 안고 사셨지요.
저는 참으로 어리석은 바보였습니다. “언젠가” 하며 미루다 빈손으로 당신을 보내드리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보다 훨씬 편한 세상을 살면서도, 왜 그리 미련하고 이기적으로 살았는지…. 아이 셋을 키우며 고단한 하루 끝에 몸을 누일 때면, 이제야 어머니가 밤마다 삼키셨을 그 외로움의 깊이를 가늠해 봅니다.
꿈속에서나마 당신이 그토록 유창했던 일본어로 마음껏 세상과 소통하고, 고운 옷 한 벌 입어보셨기를….
사무치게 그립고 또 죄송합니다, 어머니.

#사모곡 #어머니의꿈 #일본여행 #후지산 #노란투피스 #뒤늦은후회 #엄마의청춘 #한 #그리움 #김명화작가 #에세이#자서전 #자서전 대필 #자서전 대필 작가 #대필 작가 #자서전 작가 #회고록 #회고록 작가 #글쓰기 #자서전 쓰기 #대필 비용 #대필 작가의 소양 #교감 #공감 #경청 #인터뷰이 #인터뷰어
- 이전글메타 워드(Meta-word)의 구축과 자서전 쓰기 25.12.02
- 다음글길산초에서 강의한 '사랑의 일기쓰기' 수업 25.12.0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