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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응시하는 힘, 그것이 삶의 품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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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회 작성일 25-12-0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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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창조적인 삶이란 끊임없는 관심의 연속"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어머니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뜨겁게 타오르는 해바라기를 사랑하셨고, 숨 막히는 폭염 속에 시들지 않는 장미의 붉은 열정을 특별히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시선은 화려한 것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만물이 푸르른 5월에도 앙상한 삭정이만 드러낸 채 죽어가는 플라타너스를 어루만지며 지푸라기로 옷을 해 입히셨고, 화려한 꽃들이 모두 진 뒤에야 비로소 꽃망울을 터뜨리는 크리스마스 선인장의 기다림에도 깊은 애정을 쏟으셨습니다. 


세상 모든 존재를 향한 그 '관심'이야말로 어머니가 비루한 현실을 견디는 유일한 무기이자 품위였습니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할머니의 기억 속 할아버지는 마치 안개 같은 분이었다고 하셨습니다. 내일은 없고 오늘만 존재하는 사람처럼, 희뿌연 새벽안개와 함께 도둑처럼 집을 떠나곤 하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삶은 신기루를 쫓는 여정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손대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하셨으면서도, 재산이 조금 모였다 싶으면 그 모든 것을 항아리에 담아 묻어두듯 은밀하게 숨기셨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그 안온함에 익숙해질 즈음, 마치 항아리를 깨뜨리듯 모든 것을 일거에 탕진해 버리셨던 것입니다.


할머니가 소소한 행복의 맛을 음미할 찰나도 주지 않고, 할아버지는 인생의 결정적 기회들을 날름 삼켜버리곤 하셨지요. 


그 야속한 바람에 휩쓸려, 어머니의 삶도 곤두박질쳤습니다. 거대한 기와집 담장 너머로 흐드러지게 피어오르던 장미 덩굴의 향기, 그 풍요로웠던 냄새를 채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기도 전에 어머니는 쫓겨나듯 밀려나야 했습니다. 


산중턱, 슬레이트 지붕이 위태롭게 덮인 옴폭한 움막으로,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가 끊이지 않는 철길 옆 판잣집으로. 어머니는 날아가 버린 행복의 옷자락이라도 붙들려는 사람처럼, 그 비탈진 삶을 온몸으로 부둥켜안고 버티셨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그리고 어머니가 그 모진 세월을 어떻게 건너오셨는지를요. 


두 여인은 거센 삶의 물살에 무릎까지 푹 담근 채, 도망치지 않고 그 차가운 물살의 흐름을 온전히 느껴내셨던 것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 물살에 깊은 '관심'을 쏟으며,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 두 발에 힘을 주고 버티는 것. 그것이 그분들의 생존 방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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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것은 맑고 바른 정신을 갖는 것이고, 바른 정신이란 세상에 끊임없이 관심을 쏟는 것이다." 


할머니가 남기신 이 엄중한 교훈을 어머니가 머리로 이해하기도 전에, 어머니는 당신의 온몸에 새겨진 고통의 나이테를 통해 먼저 깨달으셨습니다. 삶의 진실이란, 성공이나 실패 같은 세속의 잣대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치열했던 삶과의 타협은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왔습니다. 마치 생의 전부를 걸었던 뜨거운 연애가 허무하게 끝나버린 그날 밤처럼. 할머니와 어머니가 비로소 삶의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았던 그 밤, 달빛은 정원 구석에 놓인 선인장을 은빛으로 적시며 고요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모진 풍파를 견뎌낸 선인장이 밤에만 꽃을 피우듯, 두 분의 고단했던 시간은 달빛 아래서 비로소 아름답게 승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뼈를 깎는 듯했던 그 모든 고통은 '추억'이라는 이름의 보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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