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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낡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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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회 작성일 25-12-0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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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낡지도 않는 모양입니다. 눈을 감으면 시골집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그 중심에는 소나무 서까래와 대들보가 든든하게 얽혀 있는 대청마루가 있습니다. 빗살무늬를 그리며 뻗어 내린 기둥들 아래, 어머니의 걸레질로 반질반질해진 마룻바닥이 빛나고 있습니다.


부엌으로 통하던 쪽문과 그 위의 벽장은 우리들의 작은 우주였습니다. 일 년에 열세 번 제사를 치러내던 어머니는 그 벽장에 제사상에 올랐던 전통 과자들을 갈무리해 두셨고, 그것은 형제들의 달콤한 간식이 되어주었습니다.


벽장 깊은 곳에서 어머니의 복주머니를 훔쳐보던 기억도 납니다. 금비녀와 쌍가락지, 금 귀후비개…. 어머니의 시집 올 적 패물들을 보며 언니와 나는 마치 대단한 보물이라도 발견한 양 서로 지키겠다고 난리법석을 떨었지요.


어머니가 가장 아끼셨던 자개장롱도 눈에 선합니다. 콩기름으로 닦고 또 닦아 윤을 내시던 그 장롱 유리문에는 잉꼬 한 쌍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3단 서랍장 안에 차곡차곡 개어 놓으셨을 어머니의 옷가지 냄새가 나는 듯합니다.


이제 그 집은 없습니다. 어머니도 계시지 않습니다. 눈을 뜨면 나 혼자 세상에 남겨진 듯한 적막감이 밀려옵니다. 옛 기억은 어제 일처럼 또렷한데, 방금 둔 물건은 어디 뒀는지 잊어버리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과거가 보이는 현실보다 더 선명해지는 일. 그리움이 깊어진다는 건, 아마도 이런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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