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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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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면 그리움도 젖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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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회 작성일 25-12-0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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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땅으로 낮게 내려와 흐릿한 웅덩이를 하나 놓은 아침입니다. 저 멀리 빗물을 밀어내며 달리는 차 소리가 고요한 세상을 깨웁니다. 목마른 대지는 하늘이 내린 젖을 먹고 다시 생기를 찾겠지요.


초등학교 교사(校舍) 위로 가늘게 이어지는 빗줄기가 하늘과 맞닿아 있습니다. 흠뻑 목을 축인 초록 잎들은 배가 부른지, 더욱 짙푸른 빛을 쏟아냅니다. 다가올 무더위를 견디기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부지런히 생명을 저장하는 중이겠지요.


이런 날이면 옛 기억이 빗물처럼 스며듭니다. 어머니는 식구들이 깰세라 새벽같이 부엌을 오가며 아침을 준비하셨을 테고, 아버지는 아랫목이 식지 않도록 군불을 지피고 가축들을 살피시느라 분주하셨겠지요. 


이제는 모두 아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곤한 잠에 빠져들 듯, 삶은 때때로 이야기만을 남긴 채 조용히 자취를 감춥니다. 시간은 켜켜이 쌓이고 우리는 조금씩 모습을 달리하며, 그렇게 삶은 대지 속으로 스며듭니다. 그러하기에 비 내리는 오늘 아침이 더욱 ‘새날’처럼 여겨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긴 단절의 시간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모두가 지친 기색이 역력합니다. 옆집, 옆 사람의 존재를 잊은 채, 인사 한 마디 나누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 일상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친구도, 가족도 마음 편히 만나지 못한 채 숨죽여 지내온 날들이 야속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늘 하루가 더욱 애틋합니다. 스쳐 지나간 사람, 잠시라도 대화를 나눈 사람들을 일부러라도 떠올려 봅니다. 늘 염두에 둔 사람이 아니더라도, 같은 시간 속에 머물렀던 모든 이들에게 마음으로나마 따뜻한 시선을 보내려 합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인생 자체가 비극이라 말했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사랑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마음을 나누는 일이 어려워진 세상, 그래서 당신과의 연결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비 오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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